한국어 선생님이 본 BTS의 성공: 영어와 한국어 그리고 ARMY 번역팀 (Korean ver.)


*English version: The Success of BTS from the Viewpoint of a Korean Teacher: English, Korean, and the ARMY Translation Team

 

아시아를 중심으로 K-pop (케이팝)이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하지만 진입 장벽이 높은 미국 시장에서 성공을 거둔 한국의 아이돌 그룹은 지금껏 없었다. 그런데 이 불가능해 보이던 일을 방탄소년단 (이하 BTS)이 해냈다.

BTS가 전 세계에 걸쳐 가장 인기 많은 보이 그룹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수많은 요인이 있을 것이다. 탁월한 음악성, 완성도 높은 뮤직비디오,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가사, 멤버 개개인의 매력, 각종 소셜미디어 (SNS)를 통한 활발한 커뮤니케이션 등.

한국어 선생님으로서 나는 BTS 활동에 비춰진 언어학적 변화가 흥미로웠다. 크게 세 가지 현상으로 나눠 볼 수 있다. 영어 권력의 해체, 팬들의 한국어 사용 그리고 팬클럽 ARMY (아미)의 번역 활동이다.

1. 미디어 속 영어 헤게모니의 균열

헤게모니는 사회에서 주도적 위치에 있는 집단의 힘을 가리킨다. 20, 21세기를 거쳐 링구아 프랑카 (Lingua Franca, 서로 다른 모국어를 사용하는 화자들이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 공통어로 사용하는 제3의 언어)로써 영어의 지위는 외교, 국제무역, 문화 예술에 이르기까지 가히 절대적이다. 이런 질서 속에서 BTS는 미디어 속 영어 헤게모니에 조금씩 균열을 가하고 있다.

이는 역설적이게도 영미권 사람들이 아닌 한국 사람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영어는 곧 권력’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한국에서는 영어 콤플렉스가 만연하다. 유창한 영어는 자신의 교육 수준 혹은 신분을 과시하는 방편으로 쓰이기도 한다. 이런 세태 속에서 BTS가 외신 인터뷰를 대하는 방식은 꽤나 놀랍다. 영어가 서툰 멤버들은 각종 인터뷰에서 서툰 영어로 유쾌하게 농담을 던지기도 하고 한국말로 응하기도 한다. 이런 자존감 있는 태도가 해외 팬들뿐만 아니라 한국 팬들에게 매력적으로 보였을 것이다.

BTS 이전의 한국 가수들은 미국에 진출할 당시 언어를 비롯한 모든 면에서 현지화 전략을 취했다. 기획사들은 영어를 유창하게 하는 교포를 발탁하거나 한국인 멤버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영어로 된 노래를 부르게 한 후 미국 시장에 진입하려 했다. 안타깝게도 눈에 띌 만한 가시적인 성공을 거둔 사례는 없었다. 흥미롭게도 BTS는 정반대의 전략을 취했다. BTS가 소속된 빅히트 엔터테인먼트 (Big Hit Entertainment) 방시혁 대표는 빌보드와의 인터뷰에서 아래와 같이 답했다.

“K-pop 아티스트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미국 회사와 계약하는 것은 미국 시장에 아시아 가수가 데뷔하는 것일 뿐이다. 그것은 이미 K-pop이 아니다. K-pop 아티스트와 프로듀서로서 우리는 우리가 가장 잘하는 것에 집중하되 전 세계의 음악 팬들이 공감할 수 있는 요소를 넣는 것이 중요하다.”

모두가 한국 출신이라는 꼬리표를 떼려고 노력하는 와중에 BTS는 본인의 정체성을 보다 공고히 했다. 각종 외신은 BTS의 이와 같은 정체성에 대한 자부심이야말로 미국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 중 하나라고 평가한다. 미국 공중파를 타고 흐르는 BTS의 음악들, 팬들의 떼창 그리고 멤버 이름 연호 등은 미디어 속 지배적인 언어 권력이 조금씩 무너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2. 한국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한국어 콘텐츠를 만드는 내가 BTS 팬덤의 힘을 가장 크게 느낄 때는 해외 팬들이 한국어를 사용할 때다. 한국어가 국적을 불문하고 소셜미디어상에서 이토록 널리 쓰인 적은 없었다. 그것도 있는 그대로 말이다.

스티븐 핑커 (Steven Pinker)는 각 사람의 뇌에는 어휘 사전 그리고 그 어휘들을 지지하는 개념 사전 (정신 사전)과 그 개념들 사이의 관계를 전달하기 위한 어휘조합규칙집이 들어 있다고 주장했다. 이 이론에 따르면 팬들은 한국어 어휘 사전에 그치지 않고 BTS 개념 사전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있는 듯하다.

  • 노래 가사, 들리는 대로 발음 표기하기

외국어를 접할 때는 누구나 모국어 간섭 현상을 겪는다. 특히 듣기에서 이 현상이 도드라진다. 화자의 모국어에는 존재하지 않는 외국어의 음소가 그 음소와 가장 비슷하다고 생각되는 모국어의 음소로 대체된다. 한국의 첫 번째 자음 기역 (ㄱ)을 예로 들어 보자. 기역의 소리는 엄밀히 말하면 [g]도 아니고 [k]도 아니다. 하지만 청자의 모국어에 따라 고집스럽게 [g]로도 [k]로도 들릴 수 있다. 내 경험에 따르면 이 혼란은 대부분의 한국어 학습자가 가장 처음 겪는 어려움이다. (물론 당연히 일정한 규칙은 존재한다. Ref. The Sound Change of ㄱ, ㄷ, ㅂ and ㅈ depending on the Location)

여기서 더 나아가보면 한국인에게는 들리는 노랫말이 미국인에게는 지독하게도 안 들릴 수 있다는 거다. 이런 대혼란 속에서 BTS 노래 가사를 로마자로 풀어 쓰는 것은 꽤나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한다. 콘텐츠 포맷으로는 유튜브 영상이 대표적인데 배경음악으로 BTS 노래가 나오고 각 노래 파트마다 누가 노래하는지 알 수 있게 멤버의 얼굴이 비춰진다. 그 아래에는 한국어 가사, 로마자 발음 표기 그리고 영어 번역이 나온다.

한국어를 모르는 외국 팬들의 떼창이 가능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실 한국어 콘텐츠를 만드는 나도 로마자를 표기할 때 꽤나 성가시다. 나로서는 BTS 팬들의 열정이 놀랍다. 이들에게 표기법의 정확도를 논하는 것, 가령 한국어의 연음 법칙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았다는 둥 표기법이 제각기 다르다는 둥 딴지를 거는 것은 아무 의미 없다.

BTS (방탄소년단) – FIRE (불타오르네) (Color Coded Lyrics Han/Rom/Eng)

KPOP. vine

  • 한국어 표현, 있는 그대로 사용하기

각종 소셜미디어에서 BTS 팬들이 남긴 글을 보면 한국어를 번역 없이 쓰는 경우가 많다. 멤버들의 이름 혹은 형, 오빠, 막내 같은 단어다. 팬들은 BTS 콘텐츠에 자주 등장하는 이런 어휘들을 본인의 모국어로 번역하지 않고 그대로 차용한다.

훔볼트 (Humboldt)는 언어가 인간의 의식과 사고를 결정한다고 주장한다. 이 때문에 한 언어를 쓰는 사람들은 그 언어가 부여하는 공통의 세계관을 가지게 된다. 팬들은 BTS가 만든 콘텐츠에서 언어로는 치환되지 않는 한국의 문화적 요소를 분명히 눈치챘을 것이다. 이것이 팬들로 하여금 한국어를 그대로 사용하게 한 원동력이다.

3. ARMY 번역팀의 헌신

BTS 팬클럽 ARMY는 BTS의 음악과 콘텐츠를 소비하는 데만 머물지 않는다. ARMY의 국내외 수많은 번역팀은 BTS의 음악이 한국어라는 언어 장벽을 넘어 세계인과 소통할 수 있게 도와준다. 대표적인 번역팀 Bangtan translations의 @BTS_Trans 트위터 계정은 2018년 11월 기준 140만 명 넘게 팔로우하고 있다. 그들의 유튜브 채널 Bangtan Subs는 약 100만 명이 구독하고 있다.

BTS가 소셜미디어를 잘 활용하는 만큼 그들의 콘텐츠들은 예고 없이 수시로 올라온다. ARMY 번역팀은 이런 콘텐츠들이 공개된 지 몇 분 혹은 몇 시간 만에 영어로 번역한다. 이 번역은 다시 수십여 개의 다른 언어로 번역되어 각종 소셜미디어에 공유된다. 물론 한국어에만 있는 표현 혹은 문장 구조 때문에 번역은 녹록치 않다. 게다가 BTS의 가사에는 특유의 메타포가 많다. 한국 아미들 (K-ARMY, Korean ARMY)은 영어로 정확하게 번역되지 않는 표현들에 가능한 모든 해석을 주석으로 달아 오해의 소지를 줄이려 애쓴다.

그들의 노력 덕분에 해외 아미들 (I-ARMY, International ARMY)은 BTS와 관련된 소식을 거의 실시간으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한국 아미와 해외 아미는 서로를 북돋우며 강력한 연대를 형성한다. 이 연대로부터 나오는 에너지는 다시 BTS에게 전해진다. 이것이 바로 BTS가 각종 시상식에서 ARMY를 빼놓지 않고 외치는 이유다.

BTS의 성공은 한 한국 출신 보이 그룹의 성공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미디어 속 언어로 대변되는 기존 질서에 균열을 가했을 뿐만 아니라 전 세계 사람들이 한국어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 줬다. 더 나아가 ARMY는 BTS의 이러한 행보에 힘을 모아 가속 페달을 밟아 주었다.

 

Featured video:

America’s Got Talent

Reference:

  1. “Global Sensation BTS Performs “Idol” On AGT – America’s Got Talent 2018″. Youtube, 2018, https://www.youtube.com/watch?v=9XZmUvIgCLc. Accessed 25 Oct 2018.
  2. “Boyband BTS Recognized For Developing Korea’s National Culture”. Youtube, 2018, https://www.youtube.com/watch?v=-0kIWxaw83E. Accessed 25 Oct 2018.
  3. Steven Pinker. The Language Instinct: How The Mind Creates Language. Harper Perennial Modern Classics, 2007.
  4. 이지영. BTS 예술혁명: 방탄소년단과 들뢰즈가 만나다. 파레시아. 2018.
  5. “Meet The BTS Fan Translators (Partially!) Responsible For The Globalization Of K-Pop”. Billboard, 2017, https://www.billboard.com/articles/columns/k-town/8078464/bts-fan-translators-k-pop-interview. Accessed 25 Oct 2018.
  6. “An Army Of Linguist Fans Are Behind BTS Mania”. Korea Joongang Daily, 2017, http://koreajoongangdaily.joins.com/news/article/article.aspx?aid=3036980. Accessed 25 Oct 2018.
  7. “[이상헌의 세상 속으로] 변방의 방탄소년단 키운 풀뿌리 팬클럽 – 부산일보”. 부산일보, 2018, http://news20.busan.com/controller/newsController.jsp?newsId=20180918000343. Accessed 25 Oct 2018.
  8. “Can Conscious K-Pop Cross Over? BTS & Bighit Entertainment CEO ‘Hitman’ Bang On Taking America”. Billboard, 2017, https://www.billboard.com/articles/columns/k-town/7752412/bts-bang-hitman-conscious-k-pop-cross-over-interview. Accessed 25 Oct 2018.